1979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42세가 된 K리그 전북 현대 공격수 이동국. 1990년대 후반 K리그 포항틸러스에 혜성같이 등장해서 황선홍 선수에 이은 차세대 공격수로 불리며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오릅니다. 당시 부산 로얄즈의 안정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고종수 와 함께 지금으로 따지면 K리그 아이돌이라 생각하면 될듯합니다. 차세대 트로이카 신드롬을 일으키며 K리그 인기의선발주자였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차범근 감독은 최용수, 김도훈, 황선홍과 함께 만 19세의 어린 이동국 선수를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만큼 대한민국 공격수의 미래였다고 보면 될듯합니다. 예선전이 시작되고 멕시코에 패하고, 네덜란드에게 5-0으로 지며 처참한 성적을 거둔 대표팀에 아이러니하게 스타가 탄생했는데, 그 선수는 이동국 선수였습니다
네덜란드 전에서 무기력한 공격으로 답답할 때후반 교체 멤버로 들어온 이동국은 거침없이 중거리 슛을 때리며 그나마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잘생긴 외모가 카메라에 잡히며 K리그에 관심이 없던 여성 팬들의 맘을 한 번에 사로잡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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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전국구 스타가 된 이동국은 4년 후 한. 일 월드컵에도 당연히 참가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의 ,3-4-3이나 3-5-2 포메이션에 전방 공격수도 수비 가담을 해야 했던 전술로 인해, 전통적인 타깃형 스트라이커 이동국은 선발되지 못했습니다. 월드컵이 끝나고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으로 참가해 군 면제 혜택이 걸린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상무 축구단에 입대하게 됩니다.
"위기가 기회가된 상무 시절"
전방에만 머물러있는 게으른 공격수라는 말을 들었던 이동국선수는 상무 입대이후 적극적인 활동량을 보여주며 스타일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이 시절 최고의 멤버로 무장된 독일 국가대표와의 경기에서 나온 발리슛은 지금도 회자되는 원더골로 유명합니다.
상무 소속으로 K리그 46경기 12골을 넣고 제대후에 2005년 포항스틸러스로 복귀, 기량이 만개 하며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둔 상황에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월드컵을 앞두고 무릎부상으로 또다시 월드컵 참가가 무산이 됩니다. 수술후 부상에서 회복된후 2007년 1월 겨울이적 시장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팀 '미들즈브러'로 이적 하게됩니다.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한 첫번째 선수,골을 넣을 최전방 공격수로 축구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최고의 전성기 시절 당한 부상 이후 최고의 상태가 아닌 상황의 이적이 아쉬웠고, 그 아쉬움이 현실로 다가온 EPL 시절이었습니다. 데뷔전에서 특유의 발리슛으로 골대를 맞추며 한껏 기대를 하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동국 선수마저" 내가 왜 이러지?" 할 정도로 극도로 폼이 떨어져 있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FA 컵과 리그컵에 한 골씩 넣고 다시 K리그로 돌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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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K리그 성남으로 돌아와서도 떨어진 폼은 돌아오지 않고 엔트리에 배제되어 이제 선수 커리어가 끝나지 않을까 생각하던 때, 전북현대의 공격수 조재진이 J리그로 이적하며 공격수를 찾던 최강희 감독은 2009년 이동국선수를 영입하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우려로 가득했던 이동국은 그해 완벽하게 부활하며 29경기 20골 득점왕을 차지하며 MVP를 차지 하게됩니다.
"39살에도 국가의 부름을 받은 사나이"
영화와 같은 부활과 전북현대 레전드 탄생의 시작이된 2009년 부터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역 생활을 하고 있는 이동국선수는 , 2009, 2011, 2014, 2015 시즌 MVP,2011년에는 도움왕에도 오르며 팀 플레이까지 눈을 뜨며 국가대표로 다시 부름을 받기시작했습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도 긴급 소방수로 이란전에 뛰기도 했습니다. 당시 공격수 부재에 시달리던 대표팀은 이동국을 뽑아놓고 이란전에 5분만 뛰게 하며'이럴 거면 왜 뽑았냐는' 팬들의 원성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국가대표 발탁이었습니다.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되었고 105경기 33골을 기록했습니다.
"발리장인,발리슛 하면 이동국!"
발리슛 만큼은 아마 대한민국 선수중 역대 최고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실제로 발리슛 연습을 많이 했다는 이동국 선수는 심심치 않게 원더슛을 골로 연결시켰는데요, 2004년 독일전이후에도 몇 차례 발리골을 선보였는데, 가장 멋진 골을 뽑자면 ACL에서 '가시와레이솔'과의 경기에 나온 오버헤드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동국 선수는 이수진씨와 결혼 후 쌍둥이 자매 제시,제아, 쌍둥이 자매 수아, 설아, 아들 대박이(시안). 1남4녀의 자녀들을 두고 있습니다. KBS슈퍼맨이 돌아왔다 프로그램에 쌍둥이 딸 들과, 막내 아들 대박이와 함께 출연하면서, 안방 스타로 자리 잡고 KBS연예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축구로 국민들에게 기쁨과 때로는 안타까움을 주며 20년 넘게 우리 곁에 있어준 이동국선수는, 올해도 여전히 현역으로 개막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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