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7월 27일 몬테네그로 출생의 K리그의 살아있는 레전드 선수 '데얀 다먀노비치'.키187cm, 몸무게81kg의 피지컬을 바탕으로 엄청난 골 결정력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스트라이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전북 현대 이동국과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며 조국 몬테네그로 국가 대표로 선발되며 코리안 드림을 이뤄내 축구팬들에게 '데얀민국' 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레전드 선수입니다.
조직 폭력배 보스들이 운영하던 구단의 안타까운 선수생활
1996년 자국리그 'FK 신젤리치'에서 어린나이에 데뷔해서, 2001년 'FK 라스타'에서 21경기 10골을 넣으며 제대로된 커리어가 시작이 됩니다.2007년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기 전까지는 임대생활 전전하게 됩니다.잦은 임대에는 세르비아 조폭 보스들이 운영하는 축구단 문제가 컸고 타 구단에게 마치 물건 빌려 주듯이 단기간 임대를 시키면서 임대료를 챙기기 바쁜 구단 운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세르비아를 벗어나 아시아 까지 임대를 가게되며 2006년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아흘리로 임대 이적하게 됩니다.임대기간이 끝나고 본 소속팀이었던 FK 베자니야 구단주가 자유 이적을 허용하며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됩니다.구단주는 별다른 트러블 없이 묵묵히 구단의 지시를 따라온 데얀에게 미안했는지, 병이 깊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죽기 전에 자유 이적을 허용해 주었습니다.
코리안 드림의 시작
2007년 K리그 레전드 외국인 선수 '샤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인천 유나이티드는 데얀을 영입하게 됩니다. 데뷔 첫 해 26경기에서 14골 1도움의 득점 랭킹 3위에 오르며 성공적으로 K리그에 정착 합니다. 이런 선수를 타 구단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리가 없겠죠. FC 서울은 2008년 현금 20억 원+이정열, 김태진 선수를 인천에 안겨주며 데얀을 영입하는데 성공 합니다.
2008년 초반에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그 뒤로는 꾸준한 활약으로 29경기 15골 6도움으로 득점랭킹 2위, 팀은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해서 최종 2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의 칭찬을 받은 데얀
2009년 에도 23경기에서 14골 1도움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득점랭킹 2위에 올랐는데요, 2009년 7월 24일 에는 EPL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2골을 터뜨려 맨유 감독 '알렉스 퍼거슨'에게 서울 데얀의 플레이가 뛰어났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때 서울은 맨유에게 2-3으로 연전패를 당했습니다.
2010년에는 드디어 리그 베스트 11에 뽑히면서 연말 시상식에 처음 초대받게 됩니다. 2011년에는 24골로 K리그 진출이후 첫 득점왕을 시작으로 2012년 31골 ,2013년 19골로 3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31골을 넣었던 2012년에는 MVP를 거머쥐며 K리그 최고의 선수의 명예를 누리게 됩니다.
몬테네그로 대표팀 발탁
2008년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생애 첫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2008년 10월 15일 레체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A매치에 데뷔, 2009년 6월 6일 라르나카에서 열린 키프로스와의 2010 월드컵 예선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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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꾸준히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홈&어웨이 두경기 모두 골 을 넣었습니다. 중계 방송을 보며 국내 팬들이 마치 박지성 선수의 경기를 보듯 데얀을 응원하는 진기한 상황이 연출 되기도 했습니다. 이때 데얀민국 이라는 별명이 널리 퍼지게 되었던 시기 였습니다.당시 몬테네그로는 아쉽게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2014년 에는 중국 리그의 장수 슌텐으로 이적하며 K리그를 떠나게 됩니다.장수 슌텐에서는 11경기 5골을 넣으며 괜찮은 활약을 보여 주었지만 생활의 불만족으로 얼마후 같은 리그의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 합니다. 베이징에서 득점 랭킹 3위에오르는 활약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이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여 팀의 감독을 경질하고 팀의 리빌딩 여파로 데얀은 FA로가 되었고, FC 서울로 돌아 오게 됩니다.
2016년 K리그로 돌아와 2010,2012년 이후 3번째로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됩니다. 최고의 전성기 시절에 비할수는 없지만 13골을 넣으며 충분히 팀 우승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황선홍 감독 체제에서 선발로 뛰다가 7~8월에는 후반 교체멤버가 되면서 선발로 나서지 못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남긴적이 있습니다. 37경기 19골 3도움을 기록한것을 봤을땐 이해가 가는 발언 이었습니다.
FC서울의 레전드에서 최대의 라이벌 수원 삼성으로 이적
FC서울을 위해 국가대표팀까지 차출 거부를 했던 팀의 충성도가 높았던 데얀 선수는, 2018년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서울 프런트 측에서는 '리빌딩'을 위해 데얀과의 재계약을 원하지 않았고. 은퇴식과 코치직을 제안하면서 데얀과의 관계는 끝이 나게 됩니다.
아직은 영향력이 있다 생각하는 K리그 타 구단들은 데얀과 접촉하기 시작합니다. 제주,울산,수원 중에 데얀이 이적한 곳은 서울의 최대 라이벌 수원 삼성으로 이적하며 서울팬들과 K리그 팬들은 적지않은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데얀이 왜 수원으로 까지 이적하게 되었는지 알려 지게 되면서 배신자라고 부르는 팬도 있었지만, 레전드에 대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떠나 보낸 데얀에게 미안함을 표하는 팬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2018년 1월 30일 타인 호아와의 ACL 플레이오프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수원에서의 첫 골을 신고합니다. 2월 14일 ACL 조별 예선 시드니FC 원정경기 에서도 멀티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이어 갑니다.리그 33경기 13골로 건재함을 보여주었고, ACL에서 8강 진출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2019시즌 이임생 감독이 수원 지휘봉을 잡으며 데얀은 새롭게 영입된 공격수 타가트의 대활약과 미래의 구상에서 밀리게 됩니다. 계약이 19년도까지였기 때문에, 별도의 계약연장 없이 그대로 계약을 종료되었고 2019년 12월 27일 조광래 단장의 적극적인 영입시도로 대구FC로 이적하게 되어 등번호 27번을 달고 대구파크에서 뛰게 되었습니다.
올해 나이 40살(만38세)의 살아있는 K리그 레전드 데얀 선수는 전성기를 누렸던 K리그를 사랑하면서도 FC서울에서 떠나갈때는 사랑한 만큼 미웠을때도 있었을거라 생각하는데요, 새로운 구단에서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으며 부상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선수생활을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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