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 플레이라 불리는 유비 유상철.올해 시즌 도중 건강악화로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아 많은 축구팬들에 가슴을 아프게 했었는데요, 강등권 인천유나이티드를 끝까지 지도하며 1부 리그 잔류에 성공시키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은 선사했습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풋볼 팬타지움에서는 유상철 감독 쾌유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진전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사진전은 축구사랑나눔재단이 췌장암 투병 중인 유상철 감독의 쾌유를 기원하는 의미로 열렸는데요, 남자 대표팀 벤투 감독과 콜린 벨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이 사진전에 참석해서 유상철 감독의 쾌유를 응원한 뜻깊은 자리 였습니다.
선수 시절의 유비 유상철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멀티 플레이어의 시초와도 같은 선수였습니다. 골키퍼 빼고 전포지션 소화가 가능했고 ,공격수로 뛸 때는 득점왕을 할 정도로 모든 포지션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98년 월드컵, 2002년 월드컵에 주전 선수로 활약했고, 2대회 모두 골을 기록했던 최고의 선수로써 ,2002년 월드컵 때는 베스트 11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또한,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1994년엔 수비수로, 1998년엔 미드필더로, 2002년엔 공격수로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어, 진정한 멀티플레이어로써, 충분히 증명이 된 선수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국가대표로 124경기를 뛰어, 센츄리클럽 가입자 이기도 합니다.
한때, 바르셀로나에서 오퍼가 왔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1998년 여름 바르셀로나의 루 이 반할 감독은,아약스의 데 부어 형제를 영입하고 싶어 했으나 성사되지 않아서 그 대안으로 유상철을 테스트하고 싶어 했다는 기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바르셀로나의 수석 코치였던 로날드 쿠만 은 유상철에게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2000년 네덜란드리그 비테세의 감독이 되었을 때 이미 영입을 시도했으나 유상철의 갑작스러운 부상 때문에 불발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당시,국내팀들은 해외 리그 이적을 국부유출이라고 생각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시절이었고, 몇 안 되는 국내 에이전트들은 J리그 구단과 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해외진출을 해도 대부분 J리그로 이적했던 시절에 활약한 유상철 선수의 해외진출 커리어가 아쉽기만 합니다.
해외진출을 했어도, 성공의 유무는 누구도 알수 없지만, 예전 박지성의 동료 멀티플레이어 '존 오셰이' 정도의 활약
이나, 공격적 능력이 더 좋다는 생각때문에, 그 이상의 활약도 해줬을것 같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해봅니다.
★스페인 발렌시아 소속의 국가대표 선수 이강인의 스승 유상철
2007년 KBSN 날아라 슛돌이 3기 감독 유상철과, 680명이 몰린 슛돌이 3기 공개 오디션에서 당당히 1위로 슛돌이가 된 이강인이 사제 지간이 됩니다.이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사제지간의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유상철 감독이 지도했던 슛돌이 3기 출신 중에서는 FC서울 U-18 팀인 오산고등학교에서 활약 중인 김성민, 서요셉, 이태석 선수도 연령별 대표로도 활약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디 꼭 다시 건강해져서 슛돌이 감독 시절처럼 유소년 축구 발전에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바람과,프로팀 감독으로서 성공하는 모습도 보고 싶으며,대한민국 축구계의 레전드로써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 곁에 남아주시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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